이태훈
(기타리스트, 작곡가)

“기타로 종소리 내기“



첫 질문은 이태훈이 기억하는 가장 중요한 소리에 관한 것이다. 어릴 때 들은 소리일 수도 있고 최근에 들은 소리일 수도 있다.


처음으로 음악을 들으면서 좋다고 느낀 건 초등학교 때 어머니 차를 타고 가면서 들은 나르시소 예페스(Narciso Yepes)라는 클래식 기타리스트의 베스트 앨범이다. 어머니가 왜 그 시디를 가지고 계신 건지는 모르겠는데, 그 음악이 뭔지 정확히 알고 들려주신다기보다 아이들 정서에 좋다고 하니 트신 것 같다. 그런데 그날따라 초등학생이 듣기에도 기타 소리가 정말 좋고 따듯하게 느껴졌다.

두 번째는 게임을 할 때다. 〈대항해시대〉라는 게임을 하고 있었는데, 어떤 지역에 갈 때마다 다른 음악이 나온다. 남미 어딘가를 방문할 때 보사노바 리듬과 멜로디가 들렸다. 그때는 그게 뭔지도 모르고 들었는데, 메이저인지 마이너인지 모를 분위기가 굉장히 좋게 들렸다. 칸노 요코(Kanno Yoko)가 만든 음악이었다. 그러고 보면 어릴 때부터 가사가 없는 음악에 익숙했다. 그다음에 메탈을 듣는 시기가 있었는데, 제일 큰 충격은 레드 제플린(Led Zeppelin)의 1973년 매디슨 스퀘어 가든 라이브 공연 영상이었다. 〈신스 아이브 빈 러빙 유(Since I’ve been Loving you)〉라는 곡이었는데, 솔로를 듣고 충격을 받았다. 블루스 기반의 음악인데, 롹킹(rocking)하고 노트도 많지만 밸런스가 되게 세련되게 느껴졌다. 그다음으로는 디엔젤로(D’angelo)의 소리에 빠졌다. 이상하게 날이 서 있는데도 따듯하게 좋은 느낌이었다. 생각해 보면 나에게는 다 질감이 중요했다. 꼭 어떤 장르라기보다는 좋게 들리는 소리, 뭔가 혼자 꽉 차 있기보다는 부들부들하게 여지가 있고 어디론가 갈 수 있는 그런 소리를 찾아다닌 것 같다.

그렇게 소리를 찾아다니면서 연주 톤이 정립된 거라고 볼 수 있을까?


사실 처음에는 톤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예를 들면 기타리스트 그랜트 그린(Grant Green)의 인터뷰를 봤는데, 그 사람은 앰프에서 하이랑 로우를 0으로 다 깎아 놓고 미드만 끝까지 올려서 썼다. 그래서 그걸 그냥 그대로 따라 했다. 그게 사실 굉장히 텁텁하고 어려운 소리인데, 별생각이 없으니까 그냥 그렇게 썼다. 그 와중에 와우 페달까지 썼는데, 연주하느라 바빠서 소리는 신경도 못 쓰다가 어느 순간이 되니까 드디어 미드만 올린 소리가 어색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지금은 전부 다 12시 중간에 놓고 나머지는 다 손으로 해보자고 하고 있다. 그러면 내가 왜곡을 완화할 수 있고 거기부터 앰프 세팅을 조금씩 구성하는 식이다. 집에서는 일렉 기타도 앰프를 안 꽂고 칠 때가 있는데, 점점 그 기타 소리가 들리더라. 평소에 계속 소리를 생각하면서 연주를 하는데, 애초에 찾으려고 한 소리가 서스테인이 길고 따듯한 소리였다. 기타는 서스테인이 상대적으로 짧은 악기인데, 그걸 이펙터로 인위적으로 해결하기보다 어떻게든 손과 줄로 해결해 보고 싶어 그 최대치를 찾으려고 한다. 어릴 적에 들은 나르소스 예페스의 클래식 기타에서 나오던 소리, 종소리처럼 하이가 굉장히 동그랗게 잘 깎여 있고 로우가 풍부한데 과하지 않은 그런 이상적인 소리를 계속 찾으려고 하는 것 같다.

이펙터나 앰프에 의존하는 기타리스트들도 많이 있을 텐데, 이태훈의 기타는 정반대 방향인 건가.


완전 반대다. 나는 손으로 만드는 게 좋다. 최근에 롤랜드 슈퍼 큐브 100이라는 앰프를 샀는데, 그게 사실 베이스 앰프다. 일반 기타 앰프들은 해봐야 출력이 70, 90와트여서 손으로 조금만 세게 치면 소리가 깨져 버리는데, 얘는 베이스 앰프니까 꽤 세게 쳐도 괜찮더라. 뚱뚱한데 깨끗하고 잘 들리고, 그런데 안 쏘고. 그런 걸 손으로 만드는 거다.

다양한 색깔을 가진 밴드를 여러 개 했다. 밴드마다 내고자 한 톤이 달랐나? 아니면 늘 같은 마음으로 소리를 찾아서 연주했나?


표면적으로 전달되는 요소는 노트와 화성, 리듬, 혹은 레이백이나 그루브가 어떤가 이런 것들인데, 그런 건 사실 표면적이고 사투리 같은 거라 다양한 밴드에서 흉내 내는 식으로 재미있게 했다. 하지만 늘 중요하게 고민하는 건 톤이다. 소리가 얼마나 더 잘 붙어서 울릴 것이냐, 연주 안에서 그게 어울리게 나오고 있는가, 그런 것들 말이다.

그동안 음악적으로 많은 걸 시도해 왔지만, 이태훈에게 제일 중요한 정체성은 결국 즉흥 연주자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 한 모든 작업이 사실상 즉흥 연주라는 주제로 묶일 수 있을 것 같다. 이태훈에게 즉흥이란 어떤 건지 설명할 수 있나?


음악이 궁극적으로 무엇인지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인데, 나에게는 개인적인 해소를 위한 역할이 크다. 남들을 위해서 하는 거는 그 다음이다. 장르를 여러 가지 하는 것도 매일 똑같이 하면 지겨우니까 다른 걸 하는 거지 남들한테 뭐가 더 좋게 들릴까 생각하면서 하는 게 아니다. 세컨세션을 오래 하다 보면 헬리비젼처럼 때려 부수는 걸 하고 싶고, 헬리비젼 같은 걸 오래 하다 보면 조금 더 정형화된 시도를 하고 싶고. 이런 식으로 계속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병행해야 밸런스가 맞춰지면서 마음의 평화를 찾는 것 같다. 즉흥을 하면 그 과정에서 전환이 쉬워지고, 배경은 바뀌지만 나는 계속 같은 사람이니까 하던 얘기를 다른 어조로 할 뿐이지 사실 같은 얘기를 계속할 수 있게 되더라. 그래서 요즘에는 외부 세션 연주를 잘 안 한다. 그건 남의 이야기를 해야 하니까 항상 문제가 생긴다. 내가 하고 싶은 얘기라는 게 말로 할 수 없는 추상적인 거고, 나라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기질에서 나오는 진동들이 있을 텐데 그것들을 어쨌든 악기로 표현하는 거니까 늘 그 얘기의 밀도나 종류는 비슷한 것 같다.

본격적인 음악 공부는 작곡과에서 한 건가?


처음에 클래식 작곡과를 졸업했고, 그 후에 버클리에서 기타를 한 학기 배우다가 그만뒀다. 학교를 두 번 다니는 건 도저히 못 하겠더라.

학교에서 배운 클래식 작곡법의 토대가 현재 하고 있는 연주에도 영향을 미치는가?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지금도 그때 배운 작법을 그대로 사용한다. 특히 곡의 형식이나 전개 부분에서 도움을 많이 받는다. 즉흥을 할 때 제일 어려운 부분이 뭐냐면 말이 막힐 때 그다음에 뭘 해야 하는가인데, 어느 정도 곡의 형식을 생각하고 가이드라인을 그리면 좀더 쉽게 풀린다. 클래식 작곡에는 이만큼 숨을 길게 쉬면 그다음에 어떻게 쉬어야 한다는 데이터베이스가 워낙 잘 정리되어 있으니까 그때 공부를 하면서 분석한 게 지금도 나에게 내재되어 있는 것 같다.

클래식 작곡법이라면 고전적인 대위법도 있겠지만 과거의 구성주의적 작법을 넘어서고자 한 전후 현대 음악 작곡법도 있다. 이태훈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작곡법을 좀더 자세히 말해 줄 수 있나?


과거의 관성을 깨고 뭔가 다른 표현을 하려다 보니 현대 음악의 다양한 방향들이 나타난 것 같다. 물론 12음 기법이 음악적이지 않다고 얘기하는 건 아니지만, 12음계든 무조 음악이든 또 다른 뭐든 기본적인 호흡이나 내려고 하는 톤은 달라지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나에게 큰 영향을 미친 것은 20세기 초반의 음악이다. 과도기의 음악인 버르토크(Béla Bartók)를 정말 자주 듣고 공부했는데, 그 사람은 현대적이면서도 민속적인 음악을 많이 만들었다. 민속 음악은 클래식 음악보다 좀 더 리드미컬하다. 버르토크를 공부하면서 민속적인 것과 현대적인 것의 밸런스를 익힌 것 같다. 화성을 사용할 때는 현대적인 방식, 즉 조성에서 벗어난 연주를 하더라도 출처를 알 수 있는 아웃사이드 연주를 좋아한다. 지금은 어느 정도 적절한 위치를 찾은 것 같다. 그게 클래식 공부하면서 제일 많이 도움을 받은 부분이다.


즉흥 음악으로 발표한 음반이 많은데 그 안에서도 굉장히 다른 음악들을 발표했다. 까데호(Cadejo)도 즉흥 음악 밴드를 표방하고 있는데, 테호(TEHO)처럼 서정적인 즉흥도 있고 비헤디드(Beheaded)처럼 아방가르드한 즉흥도 있다. 발표 안 된 곡들은 더 많을 것 같다.


즉흥 음악은 같이 하는 사람에 따라서 바뀌는 것 같다. 나는 음악이 대화라고 생각하는데, 즉흥 음악은 사실 장르가 아니라 아까 얘기한 톤과 태도에 더 관련이 깊다. 내 연주도 그 대화의 주제가 무엇이고 테마가 무엇이냐에 따라 바뀐다. 좀더 긴 얘기를 주저리주저리 하고 싶을 때는 테호를 하는 거고, 그래도 조금 더 친절하게 얘기하고 싶을 때는 까데호를 하는 식이다.

그런 식의 다양한 말하기가 모두 자기에게 필요하다고 느끼는 건가?


그렇다. 애초에 그건 기질인 것 같다. 한 가지 방식만으로 말하는 걸 되게 싫어한다.

즉흥연주를 할 때 머리 속으로 끊임없이 생각하면서 연주하는 편인 아니면 최대한 생각을 비우려고 하는가?


혼자서 연습할 때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한다. 규격과 형식을 지키려고 한다. 예컨대 어떤 주제의 진행과 변형에 관해 생각하다가 잠시 연주를 멈추기도 한다. 진짜로 작곡하듯이 연주하는 거다.

반면 공연을 할 때는 아예 그런 생각을 안 한다. 제일 중요한 거는 상대방이 무슨 소리를 내고 있는지 빨리 파악하고 그거에 맞는 대답을 하는 거다. 공연에서는 그걸 제일 먼저 하려고 하고, 그다음에는 내 연주를 의식하지 않으려고 한다. 이게 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는데, 분위기가 잘 맞고 서로 얘기가 잘 되면 내가 연주하는 것처럼 안 느껴질 때가 있다. 어떤 소리가 들어와서 나가고 들어와서 나가는 것은 어차피 많이 연습한 거니 자기가 알아서 돌아다니게 둔다. 거기서 뭔가를 해야겠다고 하는 순간 그 흐름이 깨지고 분위기가 확 인위적으로 변하더라. 맥락에 맞는 얘기는 내가 몸으로 이미 하고 있고, 그 얘기가 충분히 나올 때까지 기다려 주고 마무리를 알아서 짓게 만들면 되는 거다. 나는 그 과정에서 몸만 제공하면 된다.

케니 위너(Kenny Werner)가 쓴 《완전한 연주》라는 책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즉흥 연주를 하는 건 유체 이탈 상태에서 그저 연주하는 자신을 바라보는 거라는 말이었다.


유체 이탈까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의식해서 하는 연주를 최대한 안 하려고 노력 중이다. 오래 걸릴 것 같지만, 가끔씩 그렇게 내가 연주한 것 같지 않은 연주가 나오기도 한다. 이번에 까데호 음반을 녹음할 때도 그렇게 작전을 짜고 간 게 아닌데도 완전히 다르게 나온 몇 곡이 있었다. 내가 친 것 같지 않은 그런 연주들이다.

밴드 작업도 많이 하지만 솔로 음반도 꾸준히 내고 있다. 솔로 작업들서는 나일론 기타의 음색과 브라질 음악의 영향이 강하게 느껴진다. 어릴 때 큰 영향을 준 소리도 클래식 기타 소리라고 했는데, 이태훈의 내면에 가장 닿아 있는 소리는 클래식 기타 소리인 건가?


아무래도 혼자 기타를 치는 시간이 많은데 클래식 기타가 혼자 칠 때 울림이 가장 좋지 않은가. 내가 계속 내고자 한 그 둥그런 톤을 내기도 클래식 기타가 훨씬 쉽다. 한 2020년 정도까지 그런 식으로 클래식 기타를 계속 치다보니 이제는 전혀 힘을 들이지 않고도 연주할 수 있게 됐다. 작곡할 때도 클래식 기타를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고. 그 결과가 자연스럽게 솔로 음반으로 나오는 거 같다.

잠시 질문의 범위를 넓히자. 음악을 구성하는 요소는 리듬, 멜로디, 화성, 음색을 꼽을 수 있고 더 넓게 보면 사회 환경이나 테크놀로지 같은 시대적 상황도 있을 것이다. 이태훈이 생각할 때 음악에서 중요한 요소는 무엇인가?


최근에 많이 하는 생각은 분위기, 무드인 것 같다. 음악이 어떤 무드를 만들어 내면 이야기는 알아서 나온다.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을 만큼의 밀도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면 관객들도 알아서 자기 이야기를 만들더라. 그 무드를 만들려면 음색과 톤 같은 것들이 다 중요한데, 요즘은 그것보다 집중도가 제일 중요한 것 같다. 아티스트가 얼마나 음악에 집중하고 있느냐를 보여 주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중력에 끌리듯이 그 이야기에 따라 들어오게 되더라. 그 경험을 요즘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무드를 찾아가고 있다.

시대적인 이야기를 해보자. 본 인터뷰의 중요한 키워드중 하나는 컨템퍼러리라는 단어다. 예술계에서 활동하다 보면 좋든 싫든 컨템퍼러리라는 단어를 정말 많이 듣게 된다. 음악 분야로 좁혀서 말하자면 지금 시대 최전방의 소리를 찾기 위해서 분투하는 사운드 아티스트들도 있고, 또 한쪽에는 여전히 1960년대와 1970년대 음악의 톤을 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도 있다. 또 그런 이들이랑 전혀 상관없이, 예를 들어 나는 아프리카 음악이 제일 좋다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게 동시대라는 느낌을 받는데 그렇게 공존하는 소리들을 좀더 애정 있게 바라보고자 하는 것이 지금 내 작업의 지향점이다. 이태훈은 컨템퍼러리라는 말을 들으면 무슨 생각이 드는가?


컨템퍼러리는 말 그대로 지금의 소리일 텐데, 사실상 그건 장르하고는 아무 상관 없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즉흥 음악이 장르에 무관한 것처럼 제일 충실한 컨템퍼러리 음악은 결국 지금의 이야기를 하는 거 아닐까. 개인적으로는 과거의 음악이 좀더 육체적인 것, 진짜 먹고 사는 문제라든가 그런 것들 이야기를 많이 했다면, 가면 갈수록 음악이 정신적인 이야기를 하게 되는 것 같다. 내가 좋아한 현대 음악은 대부분 그런 면을 가지고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파로아 샌더스(Pharoah Sanders)와 플로팅 포인츠(Floating Points)가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랑 함께 발표한 음반이 최근에 가장 좋게 들은 현대 음악이었다. 아무 내용이 없는 것처럼 흘러가지만 지루하지 않게 계속 들을 수 있는 그런 음악이다. 현대 음악의 정의가 무엇인지 논의하는 것은 피곤한 일이지만, 계속 들어도 기 빨리지 않는 음악이 제일 현대적인 게 되지 않을까 싶다.

이태훈의 작업도 어떤 맥락에서는 컨템퍼러리 음악으로 소개된다. 비헤디드의 음반 소개 글에는 ‘두 연주자가 과감하게 동시대성을 표현한다’는 문장도 적혀 있다. 그때는 무슨 동시대성을 표현한 건가?


결국 동시대성은 개인적인 것에 연결된다. 그때는 뭔가 안 좋은 상황을 어떻게든 이겨 내고자 그런 동시대성을 이야기한 거 같다. 사실 나는 음악을 할 뿐인데 사람들이 그런 말을 만들어 주는 것 같다. 나는 실제로는 즉흥 음악이라는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똑같은 음을 열 번 치면 모두 다른 소리가 나는데, 그럼 당연히 모든 음악이 즉흥 음악인 거 아닌가. 기계가 연주한다고 해도 기계 역시 전기나 다른 것에서 영향을 받는다. 결국 어떤 음악을 이해하기 쉽게 만들어진 말이 동시대성인 것 같다.

혹시 음악 작업을 할 때 강하게 영향을 받은 시대나 장소 같은 것이 있나?


고등학교 때 미국에 가서 그때 태도가 지금도 남아 있다. 한국에서는 고등학교 때부터 입시 때문에 나는 여기에서 정말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미국에서는 정말 그런 걱정을 하나도 안 해도 괜찮았다. 내가 있던 곳은 앞으로 뭘 하고 살지 별 고민도 안 하고, 심지어 음악을 잘해야겠다는 욕심도 없이 그냥 막 하는 분위기였다. 그냥 내가 재미있으면 됐지. 그 생각이 계속 오래 남아 있는 것 같다.

마지막 질문이다. 이태훈의 무의식에서 나오는 소리를 수음할 수 있는 가상의 마이크가 있다면 어떤 소리가 녹음될 것 같나?


이태훈. 내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녹음될 것 같다. 그게 내가 살면서 제일 많이 들은 말 같다. 어릴 때는 혼나면서 들었고, 지금은 공연하면서 듣는다.